MYARTS

  • 작가명 : 박은경, 캔버스  아크릴릭 97 x 130cm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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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평론
박은경의 하룻고양이, 문명과 야행의 경계를 말하다.
김윤섭(한국미술경영연구소장, 미술평론가)

박은경(마리캣) 작가를 처음 만난 건 2010년 12월 중순이다. 그녀는 당시 서울 인사동의 한 화랑에서 <나는 숲으로 간다>라는 제목의 개인전을 갖고 있었다. 오랫동안 팬시 제품을 기획·제작하던 이름난 일러스트레이션 작가가, 순수미술의 영역으로 첫발을 들여놓던 시점이었다. 우선 고양이라는 한 가지 소개를 10년 넘게 그려왔다는 점이 흥미롭기도 했지만, 나의 눈길은 끈 것은 꼼꼼하고 섬세한 필치와 독창적인 스토리텡링의 연출력이었다.
마치 훗날 순수미술의 회화작가로서도 성공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이미 갖추고 있는 듯했다.

실제로 다섯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는 그녀에게, 지난 13년간 고양이는 가장 중요한 그림의 단골 소재였다. 그러나 그 한가지 소재만을 그려왔다고 해서 그림의 주제까지 단편적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고양이란느 주인공을 중심으로 다층적이고 풍부한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것이 그녀의 특징이다. 그간의 작품들을 통해서 볼 때, 그녀의 그림은 대략 세가지 줄기로 나누어진다.

우선 고양이 자체의 생태적 아름다움을 충심히 묘사한 그림들이다. 그녀 스스로 자신에 대해, 동물묘사에 있어 천재화가로 불린 조선후기 화재(和齋) 변상벽(卞相璧)의 추종자라 말하듯이, 그녀의 그림은 고양이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을 충실히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배경이 되는 숲의 풍경이나 동식물 소재도 모두 그녀가 사는 대관령 산골마을에서 직접 관찰하고 그려낸 것들이다. 이는 고양이라는 한 종을 넘어서서 자연 전체에 대한 깊은 우정을 갖고 살아가는 그녀의 자연주의자로서의 면모가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 변상벽의 '묘작도'를 패러디한 '묘상도(描桑圖)'와 '묘리도(猫梨圖)'가 그 대표적인 예다. 잔뜩 흥분하거나, 혹은 심술이 난 고양이의 표정과 포즈가 생생하면서도 흥미진진할 뿐만 아니라, 그녀가 직접 보고 만지고 열매를 따며 관찰하여 그린 섬세한 묘사력은 식물도감 못지않다.

두 번째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대변하는 일종의 아바타로서의 고양이 그림들이다. 2012년의 개인전 <동물의 숲>과 <숲속의 아이>에서는 커다란 배낭을 메로 장화를 신고 숲속을 누비는 어린 고양이의 모습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실제로 채집 생활과 숲 속 모험을 즐기는 작가의 일상을 바탕으로 탄생한 캐릭터들이다. 미지의 숲 속에서 나무열매를 모으로, 낮선 동물들을 만나는 고양이 캐릭터들은 밝고 낙천적인 아이 같은 작가의 면모를 대변한다.

마지막으로 유머와 해학을 담은, 우화의 주인공 같은 고양이 그림들이다. 이는 특히 전통적인 소재와 화법을 차용하는 방식으로 표현되는데, 3회 개인전 <동물의 숲>에서부터 등장한 회색 호랑이가 대표적인 주인공이다. 본경 문경 금룡사(金龍寺)의 산신도 탱화에 등장한 이 호랑이는, 그녀의 그림 속에서 일종의 자연신이나 정령처럼 자리를 잡았다. 여러 그림에 작은 엑스트라처럼 등장하여 엉뚱한 장난을 치거나 순박하게 웃고 있는 등의 모습은, '백수(百獸)의 왕 호랑이'라기보다는 커다락 '점박이 고양이'처럼 느껴진다. 사실 호랑이는 고양이과의 덩치 큰 짐승이 아니던가? 같은 맥락으로 고양이는 작은 호랑이이자 맹수 왕국의 막내인 셈이다.

이번 전시 <작은 호랑이, 큰 고양이>는 바로 그런 해학적인 고양이 모습을 전통적 미감으로 조명하고 있다. 김홍도의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를 패러디한 작품 '하룻고양이'는 이를 명쾌하게 보여준다. 등을 잔뜩 곧추세우고 사납게 눈을 부랄니 맹호의 모습은 털 하나하나와 수염까지 원전의 강하고 엄숙한 느낌에 충실하다. 그러나 그 앞에 똑같은 포즈로 꼬리를 잔뜩 부풀리고 선 새끼고양이에게 시선을 옮기는 순간 관객은 무장해제 되고 만다. 그야말로 범 무서운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 아니 하룻고양이의 기세에 웃음이 나온다. 지금 이 순간만은 호랑이가 부럽지 않은, 맹수 왕국의 막내다운 모습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사납고 엄숙해 보이는 호랑이조차 그저 위엄 넘치는 큰 고양이처럼 친근하게 느끼도록 만드는 유머가 돋보인다.
어쩌면 이것이 오랫동안 사람들을 매료시킨 고양이의 가장 큰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박은경은 고양이를 두고 '문명과 야생의 경계에 선 동물'이라 표현한다. 사람에게 한없이 귀엽고 다정하게도 굴지만, 고양이는 결코 완전히 가축화되지 않는다. 마치 그녀의 그림 속 하룻고양이처럼 작고 귀여운 모습 속에 용감한 야수의 면모도 숨기고 있다. 그런 반전의 매력을 가진 동물이 바로 '작은 호랑이', 즉 고양이가 아닐까 싶다. 그녀의 그림들은 그 매력을 때로는 전통적인 필치로, 때로는 동화적인 풍경으로 풀어낸다. 이번 전시 <작은 호랑이, 큰 고양이>에서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풍성한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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